본문 바로가기
우울을 컨트롤 하는 방법/우울은 내 친구

사라지고 싶을 때(우울은 내 친구) 1. 밝은 나를 찾아온 우울의 그림자

by 고소한 간장(NuttySoy) 2020. 9. 5.

죽고 싶다.

모래가 되어 사라지고 싶다.

내가 이 세상에 왔다는 걸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이대로 다 잘 돌아가고 나만 빠졌으면 좋겠다.

 

우울한 분들은 스스로도 모르게 이런 생각들을 하곤 하죠.

저 또한 이런 생각들을 하곤 하는데요. 어릴 적 저는 활기차고 긍정적인 아이였기 때문에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우울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진 것은 아마도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아요.

중3부터 부모님이 별거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시절은 본격적으로 엄마와 저, 여동생 이렇게 셋이서 함께 살기 시작했죠.

하지만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진 않았어요. 그저 엄마와 아빠는 더 이상 서로를 원하지 않으니 서로 감정이 상해 집안 분위기가 험악해질 바에야 갈라서서 평온한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그냥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나이에 비해 꽤나 성숙했던 저에게도 부모님의 이혼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나 봐요.

 

 

초등학교 시절 우리 가족 소개하기 숙제가 생각이 나네요.

그때 엄마는 연필을 쥐고 말똥말똥 쳐다보는 저에게

'무뚝뚝하지만 자상한 아빠와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 그리고 개구쟁이 여동생'을 받아쓰라고 불러줬었죠.

저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것만이 가족의 모습이라 생각했죠. 어린이에겐 가족이 온 우주와도 같잖아요.

그렇게 믿고 있었던 가족의 형태가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하면서 그 이면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 거예요.

 

'사실'이라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저 엄마에게 마음이 식어 집을 떠났다고 생각했던 아빠는 가정을 가지고 있었을 때부터 만났던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와 살기 위해 집을 나갔던 것이었죠. 또한 법원에서 당당하게 양육비 70만 원을 쓰라고 이야기했던 것과 달리 아빠는 고등학생이었던 저와 중학생 동생을 위한 양육비를 전혀 보태지 않았어요.

 

 

소녀 같고 여린 엄마는 한순간에 가장이 된 것이 정말 버거워 보였어요.

 

아빠를 대신한 자리에 제가 들어가 엄마가 의지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지만 18살 여고생에게 남편의 자리는 너무나 버거웠죠.

공과금, 빚 등이 쌓여가던 하루는 엄마가 주저앉아 엉엉 울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냐고 목놓아 울었죠. 엄마를 위로했어요.

 

위로를 하다가...

 

하다가...

 

조용히 제 방문을 닫고 앉아 귀를 막았어요. 아 너무 무겁다.

그때가 고3이었네요.

 

그러면서 점점 학교생활도 찌그러져간 것 같아요. 정말 원만했던 교우관계도 사소한 오해들로 일그러져갔죠.

'아 뭐지 기분이 너무 다운된다.'라고 느끼기 시작한 게 그때였던 것 같아요.

 

 

사실 아빠에 대한 원망은 '속임수'에서 폭발했던 것 같아요.

이혼 위기의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아빠는

저에게 엄마가 남자가 있는 것 같다며 분하고 참담하다고 말했거든요.

또 집을 떠난 아빠가 너무 걱정돼서 전화통화로 잘 지내는지,

밥은 잘 먹는지 물어봤을 때도 친구와 잘 지내고 있다고 했어요. 그 친구가 누군지는 말하지 않은채루요.

 

그렇게 저는 꾸역꾸역 20살을 맞이했어요.

 

어릴 적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저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결국 집에서 지원해주지 못하게 되어 포기해야만 했죠.

가장 친했던 친구 중 대부분은 대학에 입학했고, 일부는 서울로 멀어졌어요.

자연스럽게 사회에 홀로 나가야 했고요.

 

저는 대학을 간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았어요.

 

다만 남들이 이야기하는 학점이니 교수님이 과제를 냈니 하는 것들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죠. 그게 좀 불편했어요. 살짝 자격지심이 드는 것 같기도 했고요.

 

저는 빨리 돈을 벌어서 집에 보태고 싶었기 때문에 동네에 큰 서점에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어요.

정말 좋은 사장님, 언니 오빠들이 함께했지만 저의 우울증은 드디어 이곳에서 실체를 드러내게 되었죠.

(2편에서 이어집니다)

 


 

대부분의 우울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내 우울함을 남에게 전달하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것인데요.

 

물론 저도 이 글을 쓰면서 혹시나 우울한 사람이 위로를 받고 싶어서 이 글을 찾았는데 더 우울해지면 어떡하지?

괜스레 걱정이 되었답니다. 하지만 제가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왜 우울감이 찾아왔는지 아는 것이 정말 중요했어요. 병의 원인을 알아야 어떻게 치료할지 계획을 할 수 있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아니면 정확하진 않지만 그때쯤이었어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너무 괴롭지만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서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왜 우울했는지, 왜 불안했는지 마주 보도록 노력해보세요.

 

 

 

어떤 책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한 사람이 깊은 우물에 밧줄을 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갔데요.

 

우물 안은 너무 캄캄하고 어디가 끝인지 몰라서 너무너무 무서웠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겠더래요.

 

하지만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고 여기서 밧줄을 놓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있는 힘껏 밧줄을 붙잡고 바들바들 떨다가

 

'아! 이젠 정말 버티지 못하겠어!' 하고

밧줄을 탁- 하고 놓으니

 

바로 밑이 바닥이었다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있는 힘껏 버티며 불안해하지 마세요.

막상 그 밧줄을 놓으면 생각보다 바닥은 가까워요. 

 

자, 저는 이후에 연재될 글에 과거는 문이 없다고 말씀드릴 거예요.

하지만

내가 왜 우울한지 알아내기 위해 잠시 과거의 문을 열기로 해요.

힘듦을 상상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시간을 거슬러 그때의 나를 친구처럼 옆에서 지켜보세요.

 

그리고 네가 000 때문에 많이 힘들었구나

이해해주고 보듬어주세요.

 

나라는 사람은 친구의 말도 너무 잘 들어주고 공감도 잘해주는데

정작 나 스스로에게는 너무 엄격할 때가 많아요.

 

내가 나를 위로하지 않으면 정말 누가 위로해주죠?

 

우울한 나를 채근하는 대신

그래 오늘도 잘 버텨줘서 고맙다. 다독여주세요.

 

* 사라지고 싶을 때(우울은 내 친구) 시리즈는 매일매일 업로드 됩니다. 고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댓글 남겨주세요.

 

 

댓글